이재용·최태원 회장, 尹 네덜란드 국빈 방문 계기 경제사절단 참여
ASML 본사 등 방문…경쟁 치열한 EUV 장비 등 공급 논의 전망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이 반도체 장비 부문에서 추가 협력을 끌어낼지 관심이다.
네덜란드에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를 비롯해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 등이 본사를 두고 있다. 반도체 업황 부진 속에서도 차세대 기술 투자는 흔들림없이 진행중인 만큼 이 기간 핵심 반도체 장비 확보에 전략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오는 11~14일 3박4일간의 윤석열 대통령 네덜란드 순방길에 동행한다. 이 기간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끄는 선봉장으로 참가해 윤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에 힘을 보탠다.
이번 방문에서 중점적으로 지켜볼 부분은 반도체 장비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갖춘 네덜란드 기업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협력 강화 여부다.
윤 대통령은 12일 반도체 장비 기업 ASML 본사를 방문할 예정으로, 이 회장과 최 회장 역시 ASML 경영진과 함께 주요 시설을 둘러본 뒤 반도체 파트너십 강화를 논의하는 자리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반도체 기업을 대표하는 삼성과 SK 총수가 모두 출동해 네덜란드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것은 ASML이 EUV 노광장비를 유일하게 공급하는 글로벌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는 기본적으로 8개 공정으로 이뤄져 있는데 ASML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가 노광공정이다. 노광공정은 반도체 전체 생산 시간 중 약 60%를 차지하며, 비용 측면에서는 약 35%를 차지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공정이다.
EUV 노광 기술을 적용하면 회로를 새기는 작업을 반복하는 멀티 패터닝(multi-patterning) 공정을 줄이면서 패터닝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성능과 수율 향상은 물론, 제품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EUV 장비는 주문 부터 도착까지 18개월이나 걸리기에 1년에 만들 수 있는 수량이 제한적이다. 구입하고 싶어도 대기 기간이 길어 EUV 제조사는 ‘슈퍼 을’로 통한다. ASML 장비 공급 여부에 따라 삼성전자, TSMC 등 주요 반도체업체들의 제품 로드맵도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EUV 장비 보유대수는 현재 업체별로 차이가 크다. 삼성이 EUV 노광기 대수를 40여대 갖춘 것과 달리 TSMC는 100대가 넘는 EUV 장비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동안 ASML이 연간 생산대수의 70%에 가까운 EUV 장비를 TSMC에 공급해서다. TSMC는 ASML에 한 해 생산할 수 있는 EUV 노광기를 자사에 달라고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장비 확보전을 펼치고 있다.
EUV 장비 확보는 곧 생산성 향상, 사업 경쟁력 강화를 의미하는 만큼 이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2020년 세계 최초로 EUV 공정을 적용한 D램을 출시했고, SK하이닉스도 2021년부터 EUV를 적용한 D램을 양산중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태스크포스(TF)팀으로 운영해오던 EUV 전담팀을 올해부터 상설 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20년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EUV 장비를 살펴보는 모습. 왼쪽부터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피터 버닝크(Peter Wennink) ASML CEOⓒ삼성
파운드리 경쟁에 뒤늦게 참전한 인텔 역시 EUV를 활용해 올해 말 3nm(나노미터), 내년 2nm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어 EUV 장비 수급 전쟁은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수요는 많은 데 공급이 제한적이라면 급한 쪽이 적극적으로 구애 작전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미국 테일러시 공장 신설 등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삼성은 안정적인 반도체 소재·장비 확보가 절실하다. 아무리 인프라를 잘 갖췄더라도 핵심 장비 없이는 제대로 된 생산 로드맵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우시·다롄 지역에서 공장을 운영중인 SK하이닉스도 기술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ASML의 EUV 장비를 제때 도입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이재용 회장과 최태원 회장이 ASML와의 비즈니스 협력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장과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의 공식 방한 당시 베닝크 CEO와 차담회를 가지며 파트너십을 다졌다.
특히 이 회장은 상당 기간 ASML과 두터운 관계 구축에 힘을 쏟아왔다.
가장 최근은 작년 6월이다. 그는 네덜란드로 건너가 ASML 피터 베닝크CEO, 마틴 반 덴 브링크 CTO 등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EUV 노광 장비 수급 방안, 중장기 사업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이 폭넓게 오고갔다.
2년 전인 2020년 10월에도 ASML 경영진을 만나 EUV 장비 공급 뿐 아니라 운영 기술 고도화 방안, AI 등 차세대 제조기술 개발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 보다 앞선 2016년에는 방한한 버닝크 CEO를 직접 만났고, 2019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반도체 산업 의견을 나누는 등 스킨십 강화에 공을 들였다.
2022년 6월 이후 1년 여만에 ASML 본사를 다시 방문하는 이 회장은 원활한 EUV 장비 확보 및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 협력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 메모리 반도체 분야 경쟁력 고도화를 위해 ASML 경영진과의 협력 강화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이 회장과 최 회장이 이번 출장을 계기로 또다른 중장기 투자 계획을 새롭게 내놓을지도 주목한다.
대표적인 투자처로 차량용 반도체 기업 NXP가 꼽힌다. NXP는 미국 오스틴에서 공장을 가동한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 삼성전자와의 M&A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만 이후 전장사업 ‘퀀텀점프’를 위해서라도 삼성이 반도체 관련 기업 인수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네덜란드 인근 유럽 사업장을 추가로 방문하거나 해외 연구기관 및 시설을 둘러보고 사업 기회를 발굴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2022년 네덜란드 방문 이후 벨기에로 건너가 유럽 최대 규모의 종합 반도체 연구소 imec을 찾았다. 당시 그는 imec에서 최첨단 반도체 공정기술 이외에 ▲인공지능 ▲생명과학 ▲미래 에너지 등 imec에서 진행 중인 첨단분야 연구 과제에 대한 소개를 받고 연구개발 현장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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